영화 '오펜하이머'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적인 방식으로 영화가 흘러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180분이라는 러닝 타임이 너무나도 흥미진진하게 흘러갑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긴박한 파트라고 할 수 있을 트리니티 실험 시퀀스도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긴박감을 연출하는 구간을 재보면, 아무리 길게 잡아도 겨우 20분 정도만 차지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시간들이 오펜하이머란 인물이 마주쳤었던 역사 속의 인물들과, 그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졌었던 수많은 과학적, 그리고 정치적인 논쟁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목차
1. 오펜하이머 아쉬운 흥행 기록
2차 세계대전의 긴박함과 웅장함, 그리고 핵폭탄의 개발과 투하에 대한 엄청난 대사들과 정보량으로 기대감이 당황스러운 지루함과 피곤함을 느끼신 분들도 계실 텐데요, 사실 오펜하이머는 논란이 많은 영화들처럼 주로 IMAX로 촬영됐음이 중점적으로 홍보되는 것이 분명했고, 영화의 화면이 얼마나 웅장할지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전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도 영화를 즐기신 분들은 극장을 떠날 때 이런 의문을 가졌을 것입니다. 재미있게 봤는데, 이 영화의 재미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하기 때문에 오펜하이머 영화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가 주는 재미의 비결이 가장 궁금했기 때문에, 이 정적인 영화가 우리를 어떻게 즐겁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 보려고 합니다.
2. 영화 오펜하이머의 구성
일단 영화의 타임라인을 보면, 거의 정확히 180분의 러닝타임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 시작부터 60분까지 1부에서는 주인공 킬리안 머피가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여러 시행착오와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다양한 인물들을 소개하는데, 정확히 60분 뒤 오펜하이머는 아내 키티와 함께 로스앨러모스 기지에 입주하며, 두 번째 구간인 120분이 되는 시점까지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정확히 120분에, 오펜하이머의 두 개의 완전한 장치가 차에 실려서, 그가 선택한 일이 그의 손을 떠난 후 남은 60분 동안 예상치 못한 결과를 포착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영화의 물리적인 시간을 세 배로 늘리는 것을 넘어 이야기 또한 세 배로 늘어나며 중심 이야기, 다른 두 이야기를 둘러싸고 있는 듯한 독특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펜하이머가 사람들을 만나고 맨해튼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핵심 과정은 오펜하이머의 안보 청문회와 루이 슈트라우스(로버트다우니주니어)의 인사청문회라는 두 개의 렌즈를 통해 서로 다른 관점의 이야기들이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독특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구조를 조금 과장해서 설명하자면, 세 개의 삼위일체 이야기가 동시에 존재하고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세 개의 이야기가 함께 존재해야 마치 영화가 완성된 것처럼 삼위일체의 성격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펜하이머가 독특한 이유는 그가 실제 인물인 오펜하이머의 행적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지만, 그의 업적을 한 줄로 그리는 일반적인 상생의 방식을 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앞서 말했듯이 그가 성취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두 이야기를 양쪽에 배치함으로써 그가 어떤 위대함과 어떤 비참함을 함께 가졌는지 끊임없이 조명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핵무기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니라 오펜하이머와 그의 주변 인물들이 보여주는 모순의 풍부함입니다.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바로 그 모순을 바라보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사건의 중심에 있는 위대한 인물들의 암울한 모순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3. 오펜하이머와 등장인물
영화 속의 거의 모든 인물들은 각자의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가장 모순적인 모습을 보였던 오펜하이머가 주인공으로서 처음에는 핵전력이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고 믿었고, 또 그 이후에는 핵무기 개발에 반대하기도 하고, 자신의 지적 호기심과 성적 욕망 때문에 불필요한 관계를 만들고 심지어는 동료들과 가족들까지 위험과 불행에 빠뜨리기도 하는 단추를 만들어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펜하이머를 시기하고 의구심을 품었던 루이 슈트라우스 제독도 개인적인 복수를 하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사용하지만, 오펜하이머의 오만함에 대한 그의 설명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적들을 만들어 냈고, 그의 아내 키티는 첫 번째 아들을 방치하는 무책임함을 보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 누구보다도 상황을 가장 냉철하게 꿰뚫어 보며, 오펜하이머가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한 그녀의 외도 상대인 진 테틀록(플로렌스 퓨)은 꽃다발을 사서 그녀를 찾아오는 오펜하이머의 애정을 무시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오펜하이머에게 모순된 애착심을 보여주며 파멸의 길로 들어선 가장 큰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맷 데이먼이 연기한 레슬리 그로브스 대령은 오펜하이머를 끝까지 지켜준 동료였지만, 어쩌면 그가 니콜스 중령(데인 다한)을 무시한 것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니콜스가 루이스 슈트라우스의 편에 서서 오펜하이머를 공격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펜하이머의 보안에 대한 또 다른 장애물인 UC 버클리의 동료교수인 프랑스 교수 슈발리에는 확실히 오펜하이머를 이용하여 첩보 활동을 하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오펜하이머가 도움이 필요할 때 한밤중에 찾아가서 만날 정도로 감정적인 도움과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이처럼 영화 속의 모든 인물들은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 영화 오펜하이머 재미의 근원
영화 초반 오펜하이머가 학문적 진리를 갈망하며 올려다본 맑고 순수한 하늘은 영화 후반부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로 가득 찬 폐허 같은 장면으로 바뀝니다.
자신의 첫 학생들과 블랙홀 논문을 완성하며, 세계는 오늘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던 오펜하이머는 일본에 핵폭탄이 투하되었다는 소식에 광분하는 청중들에게도 '세계는 오늘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하며, 광기에 찬 그들의 환호성을 더욱더 무아지경의 상태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영화는 두 번의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의 모순된 측면을 재조명하고, 그 안에 있는 각각의 모순을 끌어냅니다. 물론 슈트라우스 제독의 말처럼 두 번의 청문회는 물론 재판은 아니지만, 우리 관객들이 이 청문회의 주장을 스크린 밖으로 바라보는 순간부터 실제로도 모순적으로 재판의 성격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실제 재판을 보면서 역사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목표였기 때문에, 저는 오펜하이머가 다른 블록버스터처럼 선과 악의 화려하거나 단순한 구성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방법은 어떤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에 지금처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IMAX를 이렇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많이 놀랐습니다.
웅장하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을 담아내기 위해 IMAX를 사용하는 기준으로 여겨졌던 것과 달리, IMAX는 오펜하이머 인물의 내부를 좀 더 안쪽으로 접근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어쨌든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들에서 벗어나면, 사람들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들이고 그것에 집중하는 대중 상업 영화의 영역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정말로 독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펜하이머 티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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