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보다 공정한 재판을 통해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여러 차례 재판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제1심 법원(지방법원 또는 지원)의 판결에 불만이 있는 경우에는 제2심 법원(고등법원 또는 지방법원 본원 합의부)에 항소할 수 있고, 제2심 법원의 판결에 중요한 법적 다툼이 있는 경우에는 제3심 법원(대법원)에 상고하여 판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법원 간의 재판 순서나 상하관계에 있어서 상급 법원의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심급제도라고 합니다.
1. 개요
3심 제도를 시행하는 국가에는 대부분 '다수 1심 법원', '몇 개의 2심 법원', '극소수의 3심 법원'의 총 3단계의 법원이 있습니다. 새로운 법적 분쟁이 생겨서 누군가 소송을 걸면 1심 법원 중 1곳이 사건을 접수하고 거기서 판결을 내립니다. 1심 법원의 판결에 불만이 있는 경우 당사자는 2심 법원에 불복할 수 있으며 2심 법원은 다시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2심 법원의 판결에 불만이 있는 경우 당사자는 3심 법원에 불복할 수 있으며 3심 법원은 다시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제1심 법원부터 제3심 법원까지 총 3단계로 법원을 순회하며 법원의 재판(판결)을 받는 제도가 바로 3심 제도입니다.
여기서 제1심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여 제2심 법원에 한 신청을 항소라고 하고, 제2심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여 제3심 법원에 한 신청을 상고라고 합니다. 따라서 흔히 2심을 '항소심', 2심 법원을 '항소법원', 3심을 '상고심', 3심 법원을 '상고법원', 그 밖에 제1심을 첫 번째 심사라는 의미의 '시심(始審)'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첫 번째 심사의 의미이지만 잘 쓰이지 않습니다. 항소와 상고를 통틀어 상소라고 합니다.
하급심 판결이 내려져도 당사자가 상소하면 사건은 상급심 재판으로 넘어가고, 사건 해결은 상급심 판결이 날 때까지 미뤄지게 됩니다. 즉 민사소송에서 1심 법원이 '피고가 원고에게 1억 원을 배상하라'라고 판결했더라도 피고가 항소하면 사건은 2심 법원으로 올라가기만 하고 이 판결은 아예 효력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2심(항소심) 법원이 사건을 재검토해 피고가 원고에게 1억 원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되면 1심 법원의 판결을 유지하는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반면 항소심 법원이 보기에 1심 법원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1심 판결을 취소하고 항소심 법원이 스스로 다른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는 2심 법원과 3심 법원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통계적으로도 상급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취소하거나 변경하기보다는 원심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든지 처음 소송을 시작할 때는 최하위 법원(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고, 하급심 판결을 받은 뒤에는 상급법원에 대한 불복 의사를 접는 경우가 많아 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이 하급법원일수록, 상급법원일수록 적게 접수된다는 것. 따라서 일반적으로 상급 법원일수록 법원 수가 줄어들고 근무하는 법관의 수도 감소합니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의 심급제도는 지방법원에서 고등법원을 거쳐 대법원까지 법원의 수가 18개→6개→1개로 감소하고, 근무하는 법관의 수도 2,500명→300명→14명으로 감소하였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3심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이런 '피라미드형 법원 조직' 형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3심 제도는 현존하는 대부분의 법치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제도로, 나라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가 다릅니다. 미국에서 이중위험 금지 원칙이 검찰의 기소에 포함된 것도 3심 제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 따라서 미 검찰은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해 항소할 수 없으며, 불기소 결정 후 재기소가 가능한 한국 검찰과 달리 재기소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심에서 무죄가 나와도 수사 의지와 발굴할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면 검찰의 항소로 2심을 진행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1심만 무죄가 나오면 거기서 끝입니다.
재판에 해당하지 않는 결정은 용어에 차이가 있습니다. 가처분의 경우 가처분 기각 결정에 채권자가 불복할 경우, 민사집행법에 따라 즉시항고할 수 있고, 즉시항고에 불복할 경우 재항고할 수 있습니다. 각각 항고심 및 재항고 심이라고 합니다. 가처분 사건의 첫 결정도 마찬가지로 '1심'이라고 하는데, 만약 채무자가 가처분 인용 결정에 불복할 경우 가처분이의사건이 되는데, 이때 새로운 사건 번호가 부여됩니다. 이 가처분이의사건에 또다시 불복할 수 있습니다.
집행정지의 경우 "1심 선고 30일까지 효력(집행)을 정지하라"는 식의 주문이 나오기 때문에, 항소심 본안사건과 함께 2차 집행정지를 신청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3심 제도와는 무관합니다. 집행정지에 불복해 즉시항고, 재항고하는 것은 3 심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2. 3심 제도의 필요성
소송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이들에게는 3심 제도가 정말 거추장스러운 존재입니다. 법원이 정당한 판결을 내렸더라도 당사자 중 한쪽이 상소하면 판결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상급법원이 다시 판결을 내릴 때까지 분쟁 해결이 그만큼 지연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심 제도는 재판상 다음과 같은 커다란 이점을 가져왔기 때문에 현대에는 세계 사법제도의 표준적인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1) 재판의 적정 도모
3심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여러 판사의 거듭된 판단으로 앞선 재판에서 간과하거나 오해한 사실을 바로잡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 하급심과 상급심의 연계를 통해 하급심에서의 판결문이나 증거자료 등의 소송자료가 상급심에게 전달되고, 이 소송자료는 상급심에게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며, 이러한 연결성으로 인해 상급심일수록 사건에 대한 여러 판사의 판단이 점차 축적되어 상급심일수록 점점 진실에 가까워집니다.
2) 재판의 통일성 확보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매일 수많은 법적 분쟁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를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원과 법정이 매우 많은 수로 존재해야 합니다. 하지만 재판부의 수가 늘어날수록 재판부 간 법률 해석이 서로 모순되거나 충돌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그 결과 재판의 통일성과 일관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는 심사 등급 제도를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재판부가 설치된 하급심법원은 업무처리가 빠르지만 재판의 일관성이 약점이고, 소수의 재판부가 설치된 상급심법원은 업무처리가 느리지만 소수정예의 특성을 바탕으로 재판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일차적인 소송사건 처리는 하급심법원으로 넘기되 판결의 모순과 불일치에 대해 상급심법원에 2차 시정권한을 부여한다는 것. 세계 각국의 법원 조직이 하급심에서 상급심으로 갈수록 인적, 물적 측면에서 좁아지는 피라미드 형태를 띠는 것도 이 때문.
요컨대 전국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법적 분쟁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하급심법원을 두되, 하급심법원이 많아질수록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하급심법원 상호 간의 법령해석, 적용불일치 문제를 소수의 정예 상급심원이 해결하여 최종적으로 1개의 최고법원이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심급제도의 목적입니다.
3. 3심 제도가 아닌 재판
3심 제도가 반드시 절대적인 법칙은 아닙니다. 대한민국 헌법도 쟁송사건의 최종심은 대법원 관할이라고 선언할 뿐 3심 제도 자체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모든 쟁송사건에 3 심제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쟁송사건을 보다 신속하고 간결하게 종결하기 위해 일부 사건에 대해서는 2심, 나아가 1심만으로 재판을 종결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1) 2심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사건
① 특허심판원의 심결에 대한 취소소송
특허심판원이 내린 판단을 취소해 달라는 일종의 행정소송으로서, 일반적인 행정소송과 달리 지방법원이 아닌 고등법원과 동급인 특허법원에 제소(법원조직법 제24조의 4). 특허법원이 판결 결과에 불복은 대법원에 하도록 되어있으므로 해당 사건은 법적으로 "특허법원-대법원"의 2 심제입니다. 다만, 특허심판원의 심판은 법원의 재판절차를 준용하므로 사실상 3 심제와 다르지 않다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②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분에 대한 불복 소송
법원에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의 일종으로, 일반적인 행정소송과 달리 지방법원이 아닌 서울고등법원에 제소합니다(공정거래법 제100조). 법적으로는 '서울고등법원-대법원'의 2 심제입니다. 공정위 처분에 법원의 심판 절차가 적용되지 않아 '사실상 3 심제'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③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재결에 대한 취소소송
해양사고에 대한 지방해양안전심판원의 결정에 대하여 당사자는 중앙해양안전심판원에 불복할 수 있으며,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의 결정에도 만족하지 못할 경우에는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소재지 고등법원(대전고등법원)에 취소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대전고등법원-대법원'의 2 심제. 하지만 해양안전심판원의 재판은 법원의 재판 절차가 적용돼 사실상 4 심제와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④ 기초지방자치단체선거소송등
기초지방자치단체장 선거, 기초지방자치단체 의원 선거, 광역지방자치단체 지역구 의원 선거 결과에 불복할 경우 관할 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합니다. 즉 법적으로 '고등법원-대법원'의 2 심제입니다.
2) 단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사건
①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 소송, 광역지방자치단체 선거 소송 중 일부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광역지자체장 선거, 광역지자체 비례대표의원 선거의 결과에 불복할 경우,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합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는 순간 사건이 종결되는 단심제.
② 국민투표무효소송
국민투표의 효력에 이의가 있는 투표인은 10만 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피고로 투표일로부터 20일 이내에 대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③ 범죄인 인도 심사 사건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한국으로 도피한 사람에 대해 해당 외국에서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면 한국 법원이 심사를 통해 인도 여부를 결정하는데, 여기서 인도 여부를 결정하는 법원이 서울고등법원인 만큼 이 결정에 누구도 불복할 수 없다는 것. 범죄인 인도 조약 문서도 참고해야 합니다. 헌재는 국가형벌권 확정을 목적으로 하는 형사절차에 해당하지 않아 합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2001 헌마 95)
④ 법관 징계 처분에 대한 불복소송
법관징계법에 따라 징계를 받은 법관이 징계에 불복할 경우 대법원에 취소를 신청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는 순간 사건은 종결됩니다.
⑤ 헌법소원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등 헌법소원 사건은 헌법재판소가 관할하지만 헌재의 결정에 불복할 수 있는 제도가 없어 단심제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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